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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트’ 해야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기사승인 2019.06.15  22: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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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열 EBS PD, 152회 영림원CEO포럼 강연

   
▲ 김유열 EBS PD(사진출처: 영림원소프트랩)

“21세기에 성공한 기업은 공통적으로 ‘딜리트(DELETE)’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딜리트란 단순히 무엇을 버리고 줄이자는 차원이 아니라 과거의 사고방식이나 관행, 곧 고정관념을 탈피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힘이다. 딜리트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인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새로운 사고가 떠오른다.”

김유열 EBS PD가 13일, 152회 영림원CEO포럼(blog.ksystem.co.kr/ceo-forum/)에서 ‘우리는 왜 딜리트 해야 하나?’의 주제 강연에서 던진 핵심 메시지이다.

입사 8년 차인 2000년에 30대 중반의 나이에 EBS 편성기획부장으로 발탁되어 기존 프로그램의 70%를 과감히 폐지하며 EBS 혁신을 이끌었던 김 PD는 그 혁신의 키워드로 ‘딜리트적인 사고 방식’을 강조했다.

김유열 PD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다큐프라임’, ‘한국기행’, ‘극한직업’, ‘다문화 고부열전’, ‘달라졌어요’, ‘학교란 무엇인가’, ‘교육대기획, 대학입시의 진실’, ‘신들의 땅, 앙코르’, ‘위대한 바빌론’,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등이다.

EBS 혁신의 키워드 ‘딜리트’, 기존 프로그램 70% 폐지 = EBS는 2000년에 교육부 산하에서 공사로 독립했다. 김유열 PD는 공사 출범 첫해에 편성기획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1992년 EBS PD로 입사해 8년차에 프로그램의 개발과 배치 등을 결정하는 핵심 보직을 맡은 것.

그는 공사 출범 첫 편성기획부장이었던 만큼 “EBS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기존 프로그램의 70%를 폐지하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2000년에는 모든 방송사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주제로 대대적인 프로그램 편성을 했다. EBS에서도 뉴 밀레니엄 특집 편성을 해야 했는데 당시 제작 예산이 고작 300만원이었다.

김 PD는 다른 방송사의 1/20 수준에 불과한 이 제작비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역발상으로 “과거 2000년간 읽힌 것은 앞으로 2000년 후에도 읽힐 것이다”라는 생각 끝에 고전 시리즈를 기획하고,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를 만들었다.

이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프로그램은 김 PD 뿐만 아니라 도올의 인생도 바꾸었다. 제작비 300만원으로 만든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10%를 기록했는데 EBS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이었다. 반면에 억대를 들여 제작한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기억되지 않을 정도였다.

도올은 이 프로그램 이후 ‘요한복음 강해’, ‘중용’, ‘인간의 맛’ 등의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이어나갔으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 PD는 이를 두고 “‘딜리트적인 사고방식’이 EBS의 혁신의 키워드”가 됐다고 밝혔다. 삼성에서는 EBS를 ‘가치혁신 성공사례’로 소개하면서 그 키워드로 ‘딜리트’를 꼽기도 했다.

딜리트는 ‘파괴’이다 = 그렇다면 딜리트란 무엇인가?

딜리트는 제거하고, 삭제하고, 배제하고, 줄이고, 빼고, 파괴하고, 축소하고, 단축하고, 박탈하고, 단순화하고, 자르고, 나누고, 끊어내고, 단절하고, 반항하고, 안티하고 등등 그 뜻이 매우 많지만 라틴어 어원상 ‘파괴’에 가장 가깝다.

EBS는 무엇을 딜리트 했는가?

김유열 PD가 EBS의 편성기획부장을 맡은 것은 2000년, 2007년, 2010년 모두 세차례이다. 그는 2007년에 오후 7시~11시 프라임 타임대 프로그램의 70%를 폐지하고 다큐에 집중했다. 특히 실내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전부 폐지하고, 그 제작 공간을 야외로 바꾸었다. 시청자들은 EBS 채널을 켤 때마다 항상 ‘자연’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혁신에 힘입어 EBS의 시청률은 무려 600% 올라가고 수상실적도 1000% 늘었다. 특히 2011년에 어린이와 다큐 프로그램은 시청률 1위를 기록했으며, 어린이 프로그램은 2011년 이후 줄곧 시청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딜리트의 효과였다. 어린이와 다큐로 프로그램을 단순화하는 장르의 딜리트, 아카데믹 다큐로 콘셉트를 통일한 콘셉트의 딜리트, 인력과 예산을 다큐에 집중하는 투자의 딜리트가 그것이다.

김유열 PD는 “이 모든 성과는 제작비가 개선되지 않는 등 제작 여건이 가장 좋지 않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라면서 “창의적인 혁신은 풍족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결핍 상태에서 이뤄진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라고 밝혔다.

노자와 니체의 ‘딜리트’ = 김 PD가 창조의 기술로 삼고 있는 딜리트의 철학적인 배경은 노장의 무위사상과 니체의 니힐리즘이다.

그는 노자 16장의 ‘치허극 수정독 만불병작(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빈 공간에 이르기를 극단적으로 하고, 고요함을 지키면 만물이 함께 만들어진다)’이라는 글귀를 들어 “요즘 같은 정보 과잉 시대에 두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뿐더러 신체적인 질병도 생긴다”라면서 “비우고 고요한 상대에 들어가면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동으로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김 PD는 또 “니체의 니힐리즘을 ‘허무주의’로 번역해 오해를 사고 있는데 그 올바른 뜻은 최고의 가치에서 탈가치화 또는 무가치화하는 것”이라며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것은 중세 1000여년을 지배한 기독교적 가치에서 벗어나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과 악의 창조자이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파괴자여야만 하며 가치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니체의 말을 들려주며, 탈가치화가 혁신의 시작점이 된다고 강조했다.

니체가 ‘망치를 들고서 의문을 제기해본다’라거나 ‘나는 다이너마이트’라고 말한 것은 과거 최고의 가치를 무가치화 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자세였다는 게 김 PD의 얘기다.

김 PD는 과거 가치의 무가치화의 예로 유리컵을 들면서 “유리컵을 망치로 부수면(딜리트) 유리컵은 유리가루로 변하고, 이 유리가루로 수많은 새로운 것들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과잉 상태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을 덜어내고 기존 가치를 떨쳐 버리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딜리트는 창조의 명령어 = 김 PD는 비자카드 개발자인 디 호크(Dee Hock)의 “문제는 새롭고 개혁적인 생각을 어떻게 마음 속에 집어 넣느냐가 아니라 오래된 생각들을 제거하느냐에 달려있다. 모든 마음은 낡은 가구로 가득 차 있는 건물이다. 마음의 한 구석을 비워라. 그러면 창의성이 즉시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라는 말을 들어 “딜리트는 창조의 명령어”라고 강조했다.

김 PD가 말하는 딜리트의 원리는 간단하다. 뭔가에 딜리트를 붙이면 전혀 다른 상상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복잡한 장식+딜리트 = 단순한 장식’, ‘다품목+딜리트 = 소품목‘, ’액체+딜리트 = 고체, 기체‘, ’시의성+딜리트 = 고전성‘, 사각형+딜리트 = 원, 삼각형, 오각형’ 등이다.

무엇을 딜리트할 것인가에 대해 김 PD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그 딜리트 대상의 예로 경계, 기능, 모양, 컬러, 용도, 콘셉트, 재질, 요소. 방식 등을 들었다.

김 PD가 기획한 ‘세계테마기행’도 딜리트를 접목했다. ENG 카메라를 6밀리 CAM과 핸드폰, 일반 카메라로, 1급지 목적지를 2,3급 오지(아프리카 등)로, 주당 편성 횟수를 1회에서 2~4회로, 성우를 전문 성우에서 일반인으로 바꾼 것은 딜리트적인 사고 방식에서 비롯됐다.

성공한 딜리터들 = 김유열 PD는 그간 성공한 딜리터(Deleter)로 스티브 잡스, 제임스 다이슨, 러시, 태양의 서커스, 샤넬, 오드리헵번, 피카소, 링컨 등을 꼽았다.

이 가운데 가장 성공한 딜리터는 피카소, 피카소는 생애 5만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회화는 물론 조각상, 도자기, 판화 등 그 작품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또 1903년부터 1925년까지 청색에서 시작해 장미빛, 입체파, 콜라주, 신고전주의, 초현실주의 등 약 2년 간격으로 화풍을 바꾸었다. 피카소는 이를 두고 “내 그림은 파괴의 총액”이라고 말했다.

피카소는 현대예술 곧 내가 살아있을 때의 예술을 살해하려 한다며, 양식의 파괴와 자기 부정에 힘쓴 인물이었다. 피카소는 이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원근법을 파괴하기도 했다.

패션 디자이너 샤넬은 모자에 주렁주렁 달린 꽃과 같은 장식물을 다 떼어 버리고 아주 단순화함으로써 모자 혁명의 선구자가 됐다. 또 여자의 허리를 잘룩하게 하는 코르셋에서 벗어나 간단하면서도 우아한 ‘리틀 블랙 드레스(LBD)’라는 새로운 퍠션을 창조했다. 이 LBD는 더구나 상복으로 입는 검정색 옷을 평상복으로 바꾸었다.

영화배우 오드리헵번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LBD를 입고 나와 전세에 유행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1985년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경영 부진으로 쫓겨났다가 1997년 다시 컴백해 반투명 컬러의 아이맥 G3로 큰 성공을 거뒀다. 스티브 잡스는 복귀한 후 제품 수를 40여개에서 4개로 축소했으며, 위원회, 시장조사도 폐지했다. 또 100쪽 짜리 계약서를 5~6쪽으로 줄이고 광고회사의 프리젠테이션도 없앴다.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기업? = 김유열 PD는 ‘딜리트’ 함으로써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독일의 할인 마트인 ‘알디(ALDi: Albrecht Diskont)‘를 소개했다.

알디는 제품의 품질은 손상시키지 않은 채 오직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원가를 줄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동원해 가격을 낮춘다. 1962년 알브레히트 형제가 설립한 알디는 이러한 전략에 힘입어 현재 전세계에 1만개 점포를 두고 연평균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알브레이트 형재의 재산은 약 50조원이었다.

디지털 브랜드업체 ‘시겔+게일’은 자체 조사한 ‘글로벌브랜드단순화지수’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기업 1위로 알디를 꼽았다.

알디는 판매 상품을 1,500개의 생필품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PB 상품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매장 규모는 400평의 단층이며, 품목당 상품 가지수는 1~3개 뿐이다. 납품업체와는 10년 장기 계약을 맺고 있다.

알디에는 홍보, 마케팅, 법률 기획실이 없으며, 컨설팅이나 시장조사, 소비자 조사도 하지 않으며, 연간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쇼핑백도 없으며 상자 째 전시한다. 인건비 비중은 2.8%로 월마트의 10~15%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제품에 바코드 5~6개를 붙여 계산대는 전광석화처럼 처리한다.

<박시현 기자> pcsw@bikorea.net

◆영림원CEO포럼 (http://blog.ksystem.co.kr/ceo-forum/)

영림원 CEO포럼은 2005년 10월 첫 회를 시작하여 매달 개최되는 조찬 포럼으로, 중견 중소기업 CEO에게 필요한 경영, 경제, IT, 인문학 등을 주제로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강연한다.

박시현 기자 pcsw@bikorea.net

<저작권자 © BI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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